오후에 빨래를 걷으려고 건조대 앞에 섰을 때는 대부분 다 마른 것처럼 보였다. 티셔츠 몸판을 만져 보니 보송했고 소매 끝에도 젖은 느낌이 없었다. 그대로 걷으려다가 가운데 걸린 수건 한 장을 먼저 빼냈다. 그 순간 뒤에 가려져 있던 티셔츠 소매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소매 안쪽에 손을 넣어 보니 손끝에 서늘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티셔츠 한 벌을 다시 건조대에 펼쳐 놓고 어디가 덜 말랐는지 살펴봤다. 목둘레와 봉제선을 손으로 눌러봤지만 그쪽은 이미 보송했다. 나는 소매가 어느 자리에 놓여 있었는지부터 다시 살펴봤다.
소매가 수건 뒤로 들어간 것은 빨래를 널 때가 아니었다
빨래를 널 때는 티셔츠와 수건 사이에 간격을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티셔츠 소매 한쪽이 아래로 처졌고 옆에 있던 수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수건을 치우고 나서야 두 천이 넓게 맞닿아 있던 자리가 보였다. 처음에는 티셔츠 전체가 덜 마른 줄 알았지만 손으로 다시 만져 보니 몸판과 목둘레는 이미 보송했다. 서늘함이 남은 곳은 수건 뒤에 숨어 있던 얇은 소매였다. 다른 빨래 사이에는 손바닥이 들어갈 만큼 공간이 남아 있었지만, 아래로 길게 처진 소매만 수건 옆면에 붙어 있었다. 빨래를 널던 순간에는 간격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옷의 모양이 달라져 서로 닿은 것이었다.

바짓단에서는 건조대 봉에 걸린 부분이 접혀 있었다
티셔츠를 다시 걸어 놓은 뒤 옆에 있던 긴 바지도 살펴봤다.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바짓단 한쪽이 건조대 봉 위에서 접힌 채 걸려 있었다. 접힌 부분을 펴 보니 바깥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서늘함이 안쪽에 남아 있었다. 빨래를 널 때 바짓단이 길게 내려오지 않도록 봉 위에 한 번 걸쳐 놓았던 자리였다. 천이 다른 빨래에 가려지거나 한쪽으로 접히면 바깥쪽이 먼저 마른 것처럼 보여도 안쪽에는 수분이 남을 수 있다. 젖은 빨래가 마르는 동안에는 천 주변의 습한 공기가 새로운 공기로 바뀌어야 하는데, 천이 포개지거나 다른 빨래와 넓게 맞닿으면 그 부분의 공기 흐름이 줄어들 수 있다. 바짓단을 봉에서 내려 길게 펼쳐 놓았다. 이번에는 접힌 부분이 다른 빨래에 닿지 않도록 옆쪽으로 조금 벌려 두었다.
겨드랑이와 주머니 안쪽도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건조대에 남아 있던 옷을 하나씩 전부 만져 보지는 않았다. 대신 천이 겹치기 쉬운 곳 몇 군데를 살폈다. 반팔 티셔츠의 겨드랑이 부분은 앞뒤 천이 가까이 붙어 있었고 바지 주머니 안쪽은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 상태를 알기 어려웠다. 바지 주머니를 밖으로 조금 빼 놓고, 겨드랑이 부분은 앞뒤 천이 붙지 않도록 벌려 두었다.
가운데 수건을 먼저 걷자 건조대 안쪽이 드러났다
저녁이 되어 빨래를 걷으면서 이번에는 가장자리 옷부터 차례로 빼지 않았다. 손으로 만졌을 때 이미 보송한 수건 몇 장을 가운데에서 먼저 걷었다. 수건을 팔에 걸치고 다시 건조대를 보니 조금 전까지 천에 가려져 있던 안쪽 봉과 옷의 아랫부분이 한꺼번에 보였다. 수건 한 장이 빠진 자리 옆에는 티셔츠 소매가 비스듬히 내려와 있었고, 긴 바지 한쪽은 다른 옷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빨래가 많이 걸려 있을 때는 옷 한 벌의 모양보다 앞뒤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몇 장을 먼저 걷고 나니 어느 천이 다른 옷에 닿아 있는지 눈으로 구분하기 쉬워졌다. 비어 있는 봉에 새로 빨래를 옮겨 걸지는 않았다. 수건이 빠지면서 생긴 공간은 그대로 두고, 옆 옷에 붙어 있던 소매만 떨어뜨려 놓았다. 긴 바지도 한쪽으로 몰리지 않게 펼쳤다. 처음에는 빨래 사이로 손을 넣기도 좁았던 가운데에 건조대 봉이 드러날 만큼 빈자리가 생겼다.
빨래를 걷기 전에 가려진 곳부터 살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옷이 보송하면 한꺼번에 걷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겉으로 잘 마른 것처럼 보여도 가려진 부분에는 서늘함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그날 이후에는 옷의 겉면만 보지 않고 소매나 바짓단처럼 다른 천에 가려지기 쉬운 부분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됐다. 건조대에 빨래가 많이 걸린 날에는 앞에서 보이는 면만으로 상태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빨래를 걷기 전에는 옷 사이와 접힌 부분에 다른 천이 붙어 있지는 않은지 먼저 확인하는 순서가 생겼다. 빨래가 모두 마른 뒤에야 걷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걷기 전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 그날 이후 더 오래 남았다.